정말 인연이 있을까?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봐요...’

‘그만 잊어. 그사람은 인연이 아니었어...’

너무나 가슴아픈 말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인간관계가 극적으로 반전하는 상황이 오면 흔히 우리는 ‘인연이 아니다’, ‘인연이 아니었다’ 란 말을 사용한다. 스스로를 위로할 때도 쓰고, 타인을 위로할 때도 종종 저 말을 건네준다. 하지만, 인연이 아니란 말이 과연 위로가 될까?? 모르겠다. 혹자는 빨리 포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저 말을 들으면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내가 원하는 방향과 반대로 관계가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내 뜻과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움이나 조언을 줘야지, 정반대의 방향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라고 오히려 설득을 하다니... 단지 인연이 아니란 말 하나로 포기가 된다면 애초에 위로받을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과연, 인연이란 것이 있을까? 내가 무슨 일을 하던 어디를 가던 나와는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사람(혹은 사람들)이 있을까?

비슷한 주제에 대해 옛날 사람들도 항상 의문을 가지고 고민을 했나보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의 세계나 정해진 운명 같은 것들을 부정하고 모든 행동은 예측과 통제를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후천적인 노력을 강조하는 이론들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많이 정립시켜왔다.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 보자. 예를 들어, A라는 여학생이 ㅇㅇ대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봄이 되어 대학 캠퍼스에서는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나를 반기고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손을 흔든다. 여지껏 공부하느라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봤는데 대학에 오니 잘생긴 남학생들도 많이 보이고 어쩐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동아리를 홍보하는 전단지가 여기 저기 붙어있고, 캠퍼스 생활의 낭만을 느끼려면 왠지 동아리 하나쯤은 가입해야 할 것 같다. 어디를 가볼까 고민하다가 친구와 역사연구동아리에 들어갔다. 유적지에 자주 놀러(?)간다는 홍보글을 보고 콧바람을 자주 쐴 수 있을 것 같아 별 생각 없이 가입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동아리방에 들어가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B남학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그는 꿈에서 그리던 백마탄 왕자님처럼 너무나도 멋있었다. A양은 그를 본 순간 운명처럼 그에게 반했고, 몇 번의 데이트를 한 뒤 사귀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고, 스마트폰에는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차곡차곡 사진으로 남겨지고 있었다. A양은 이것이 인연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학교들 중 ㅇㅇ대학교에 입학한 것도 신기했고, 수많은 동아리들 중 우연히 역사연구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어 B군과 만난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모든 상황이 그를 만나게끔 이끌어준 것 같았다. 수백 수천만분의 일의 확률로 그를 만난 게 정말로 인연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내 다른 연인들처럼 서로에게 바라는 점이 많아지고 서운함이 쌓여 늘 그렇듯 성격상의 차이로 헤어짐을 맞이한다. 첫 이별이 너무나 힘들어 위로라도 받고자 친구들과 만났는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그만 잊어. 그 사람은 인연이 아니었어...’

 그렇다면 B군은 A양에게 정말로 인연이었을까? 행동주의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아니다. A양은 역사연구동아리가 아니라 밴드동아리에 들어갔어도 그곳에서 다른 멋진 남학생을 만나 사랑에 빠졌을 수도 있다. 봉사동아리에 들어갔어도 그곳의 누구와 멋진 연애를 했을 것이다. 심지어 대학교에 낙방을 해서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했었더라도 그곳의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만나 운명처럼(?) 연인이 되었을 것이다.

정해진 운명은 없다. 어느 일이던지 먼저 정해진 것은 없다. 뭐든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기 나름이다. 어떤 사건이던지 원인이 먼저 있고, 결과는 후천적이다. 정해진 인연 또한 없다. 인연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인연이고 나쁘면 인연이 아니라면, 애초에 인연은 없다는 것이다.

 .

 .

 . 

라고 나는 생각한다.

※ 여기서 말하는 인연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因緣)과는 다른 의미이다.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인연이라는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에서 나왔겠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불교에서 쓰이는 인연은, 안쪽에서의 원인 즉 인이 있고, 인과 연이 닿아 인연이 된다는, 오히려 인과관계를 중요시하는 멋진 말이지만, 우리가 흔히 쓰는 인연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조금 바뀌어 이미 정해진 운명(destiny)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

.

.

열심히 인을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 연이 닿아 autumn을 만날 기회가 온다고 믿는다. 그것이 인연이다. 기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고 기회가 왔을 때 놓치면 안되니 그때까지 잘 준비하고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