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리뷰
- 리뷰/책
- 2019. 1. 9. 00:12
얼마만의 책 리뷰인가... 반성하면서 시작 ㅠㅠ
소설책을 읽지 않은 지 굉장히 오래 되었다. 족히 10년은 된듯 하다.
우연한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읽찌라 님이 이 책을 너무 재미있게 소개해주셔서~
참지 못하고 구매했다 ㅋㅋ
나는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보는지라.. 실제로 구입한 몇 권 안되는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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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알랭 드 보통이라는 사람인데 난 잘 몰랐다. 알고보니 엄청 유명한 프랑스 작가이고, 이 책이 그의 첫번째 작품이다. 이 책으로 인해 유명세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역자는 알랭 드 보통의 처녀작이라고 소개했는데 '처녀작'이 뭐야.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초판이 1993년에 출간되었으니 참 오래되고도 오래된, 가히 고전급의 소설이다.
그런데도 전혀 구식이지 않고 현대의 감성으로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곧바로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락하는 사람[우리는 곧 배은망덕해진다]이나
절대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우리는 곧 그사람을 잊어버린다]이 아니라, 희망과 절망의 양을 적절하게 분배하여 상대의 마음에 안겨줄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곧 배은망덕해진다], [우리는 곧 그 사람을 잊어버린다] 의 공감력..
이 책을 읽는 내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연애를 하며 자칫 상대방에게 가질 수 있는 죄책감 같은 감정들을 가볍게 풀어내어, 읽는 이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해준다랄까? '아 나만 이런 감정을 느낀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 작가가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그러려면 우선 관찰력이 좋겠지.
정작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경우에 그 사람의 매력이 순식간에 빛이 바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 그 사람이 나같은 사람을 사랑할 만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내가 바라던 대로 멋진 사람일 수 있을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떤 면에서 나보다 낫다고 믿어야만 한다면, 상대가 나의 사랑에 보답을 할 때 잔인한 역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그녀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좋아해서 그렇게 쫓아다니던 이성이, 시간이 지나 막상 나를 좋아하게 되면 어딘가 매력이 떨어져 보이는 그런 기분을 누구에게서라도 한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이런 감정에서 오는 죄책감 같은 것들이 있는데('나는 쓰레기인가' 하는 죄책감) 이런 감정들을 가볍게 건드려 줌으로서 독자를 위로해준다.
우리가 아는 또다른 마르크스(공산주의 그 마르크스 말고)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들여줄 클럽에는 가입할 생각이 없다고 농담을 했다. 이 농담은 클럽 회원권과 마찬가지로 사랑에도 적용되는 진리이다. ... 클럽에 가입하기를 소망하면서 그것이 실현되자마자 그 소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클로이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랐으면서, 막상 그녀가 나를 사랑하자 그녀에게 화를 내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누가 봐도 나쁜놈이고 나쁜 감정이지만, 사람에게(나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안타깝더라도 인정해야 한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문제를 알면 그 다음부터는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문제조차 인정을 안한다면, 문제가 없는데 해결할 게 뭐가 있겠는가.
대부분의 관계에는 보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이 있다. 사랑이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사랑과 자기혐오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다. 자기혐오가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저런 핑계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쓸모없는 면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자존감과 관련이 큰 것 같다. 자존감이 낮다면 나를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못난 모습을 투영하게 되어서 상대방이 미워지는 게 아닐까.
가장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로맨스는 우리가 오랜 기차 여행을 하다가,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름다운 사람을 몰래 눈여겨보며 상상하는 것처럼 순수하지 않다. 그런 완벽한 러브스토리는 그 아름다운 사람이 다시 열차 안으로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사람과 기차에서 파는 샌드위치가 너무 비싸다며 따분한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손수건에 세차게 코를 푸는 순간 중단되고 만다.
우스개말로 남자의 이상형은 '처음 본 여자'라는 말이 있다. 그 역시 처음 봐서 그 여자를 잘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구두 사건이 있고 나서 며칠 뒤 나는 신문과 우유를 사러 신문 판매소에 갔다. 폴 씨는 마침 우유가 다 떨어졌다고 하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창고에서 가져오겠다고 했다. 나는 폴 씨가 가게 뒤편으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가 두꺼운 회색 양말에 갈색 가죽 샌들을 신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놀랄 만큼 추한 모습이었으나, 정말 묘하게도 놀랄만큼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왜 나는 클로이의 구두를 보았을 때는 이런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을까? 왜 나는 신문 판매소 주인은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여자친구의 요상한 신상 구두를 보고 차마 칭찬을 못하고 그게 뭐냐며 핀잔을 주어 여자친구와 싸우고 난 후의 상황이다. 이런 감정들을 캐치해 내다니. 정말 놀랍도록 놀랍다.
나와 클로이의 관계가 공포정치 수준에 이르지 않았던 것은 ... 그 재료는 다름아닌 유머 감각이다. ... 클로이와 내가 우리의 차이 가운데 일부를 넘어설 수 있었다면 그것은 서로의 성격에서 발견되는 막다른 골목을 가지고 농담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클로이의 구두를 싫어하는 태도를 버릴 수 없었고, 그녀는 계속 그 구두를 좋아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그 사건을 농담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를 찾았다. 말다툼이 심해질 때마다 자신의 몸을 "창 밖으로 내던지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늘 상대에게서 웃음을 끌어낼 수 있었고, ...
소설 속에서 클로이는 화가 나서 그 구두를 창 밖으로 내던진 적이 있다. 서로 다름에서 오는 피곤함과 좌절감의 해결책은 역시 '유머' 인 듯 하다.
나와 함께 있음으로 해서 내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클로이는 카밀레 차에 사각 설탕이 녹는 것을 지켜보면서 말했다.
이건 그냥... 번역체가 싫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주어를 꼭 저렇게 길게 늘여서 써야 하는가? 조금 더 한국식으로 번역을 해줄 수는 없단 말인가요 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 누가 나를 수줍어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마 결국 수줍어하게 될 것이다. 누가 나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계속 농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나도 이런 상황을 종종 겪어서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자존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의 특징이었구나!
우리가 우리 짝과 얼마나 행복하든, 그 사랑 때무네 다른 사람을 쫓는 일은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울 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데도 왜 그것이 구속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짝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기울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왜 그것을 아쉬워할까? 사랑의 요구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늘 갈망의 요구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바람은 피지 말자.
여담 )
외국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어쨋든 번역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책 자체가 읽기가 힘들다. 내가 난독증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더군다나 이 책은 작가가 좀 독특한 형식의 문장(?)으로 글을 썼고 철학적인 내용도 종종 나오기에 처음에는 잘 안읽혀져서 힘들었는데 점점 적응을 하니 읽혀지기 시작했다. 가만 보면 소설책은 작가만의 글쓰기 방법이 있는 듯 하다. 또 그런 독특한 형식의 글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다. 알랭 드 보통만의 스타일에 적응이 되자 술술 읽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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