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어령이라는 사람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책을 접하고 나서 검색해 보니 문인쪽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분이셨다는걸 알았다. 책의 초판이 2021년 10월에 발행되었고, 저자는 2022년 2월에 안타깝게도 영면에 드셨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이 이어령님의 마지막 인터뷰였고, 이어령님이 죽음을 문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이야기들이 알뜰하게 실려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난해한 부분도 가끔 있었지만 이 분이 얼마나 지식이 많고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여 통찰력을 가지신 분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후에 알게 된것이 참으로 아쉽다. 다행인건 이분이 남긴 책은 영원히 남아있으니 나중에 꼭 다시 한번 저자의 책을 읽어보며 그의 지혜를 더 얻어보려고 한다.

 

 그렇지. 살아 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관찰해보면 알아. 하늘을 나는 새를 보게나. 바람 방향으로 가는지 역품을 타고 가는지. 죽은 물고기는 배 내밀고 떠밀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작은 송사리라도 위로 올라간다네. ... 떠내려간다면 사는 게 아니야. 우리가 이 문명사회에서 그냥 떠밀려갈 것인지, 아니면 힘들어도 역류하면서 가고자 하는 물줄기를 찾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네.

 물에 떠밀려 둥둥 떠내려가는게 참 편하겠지만, 그건 옳은 삶의 자세가 아닌것 같다. 내 의지대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물살을 거슬러 가보는게 더 보람되고 뜻있는 삶을 사는 자세인 것 같다.

 

 밤사이 내린 눈은 왜 이렇게 경이로울까요?
 변화잖아. 하룻밤 사이에 돌연 풍경이 바뀌어버린 거야. 우리가 외국 갔을 때 왜 가슴이 뛰지? 비행기 타고 몇 시간 날아왔더니 다른 세상이 된 거야. 하루하루 똑같던 날들에서, 갑자기 커튼콜 하듯 커튼이 내려왔다 싹 올라가니까 장면이 바뀌어버린 거야. ... 어제 보던 지붕, 어제 보던 길거리. 어제 보던 논밭이 하얀 바다처럼 변했을 때 세상이 얼마나 찬란한가. 눈 뜨면 달라진 세상, 그런 경이로움을 문학에서는 '낯설게 하기' 라고 하네.

 

 아니야. 똑같은 시간을 살아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은 산 게 아니야. 스토리텔링이 럭셔리한 인생을 만들어. '세일해서 싸게 산' 다이아몬드와 첫 아이 낳았을 때 남편이 선물해준 루비 반지 중 어느 것이 더 럭셔리한가? 남들이 보기엔 철 지난 구식 스카프라도, 어머니가 물려준 것은 귀하잖아. 하나뿐이니까.

 집에서 가만히 쉬는것보단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하며 경험을 쌓는게 인생을 더 풍족하게 만드는 방법인 것 같다.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나중에 나이들어 회상하며 미소지을 수 있는 즐거움도 있지 않을까. 집에 있는거 너무 좋아하지 말자.

 

 이보시오. 어째서 손도 덜 가고 단순한 이 무문석이 더 비쌉니까?
 모르는 소리 마세요. 화문석은 무늬를 넣으니 짜는 재미가 있지요. 무문석은 민짜라 짜는 사람이 지루해서 훨씬 힘듭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내가 무릎을 쳤어. 화문석은 짜는 과정에서 무늬를 넣을 기대감이 생기고 자기가 신이 나서 짜. 반대로 무문석은 오로지 완성을 위한 지루한 노동이야. 변화가 없으니 더 힘든 거지.
 인생도 그렇다네. 세상을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고된 인생이지만,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 ... 공자가 그러지 않나.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는 식사를 잊어버린다고. 자는 걸 잊고 먹는 걸 잊어. 의식주를 잊어버리는 거지. 그게 진선미의 세계고, 인간이 추구하는 '자기다움'의 세계야. ... 그게 아이덴티티거든. 자기 무늬의 교본은 자기 머리에 있어. 그걸 모르고 일평생 남이 시키는 일만 하다가 처자식 먹여 살리고, 죽을 때 되면 응급실에서 유언 한마디 못하고 사라지는 삶.. 그게 인생이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나? 한순간을 살아도 자기 무늬를 살게.

 나의 무늬는 뭘까? 내 인생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이 시키는 일 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며 의식주를 위한 삶을 살아온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뭘까? 어떤걸 할때 자는것 먹는것도 잊으며 즐겁게 했지? 재테크 하는것도 좋아하지만 이것도 그 자체로서 좋아한다기보다는 수단의 성격이 더 강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건 뭐가 있을까?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책을 읽고 나서 이어령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고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아래는 한 인터뷰인데 이어령님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좋은 영상자료였다.

https://naver.me/5mYwJLiM

 

이어령

“나의 동력은 지적 호기심, 제 머리로 끊임없이 생각할 때 1초 전의 나와 1초 후의 나는 달라집니다.” 이 시대 지성을 대표하는 석학(碩學) 이어령. 평론가에서 언론인, 교수, 그리고 문화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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